레드시그널 지극히 사사로운

정말 못생긴 애한테 못생긴게, 라고 하지 않듯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노인네같은 소리한다고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종종 들어본 말이다. 하지만 애써 조숙하게 말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간 축적된 경험치가 알려오는 시그널이라는게 있고 그걸 받는 촉이라는게 있다. 사랑해마지 않는 웹툰작가 이보람은 그걸 조상님이 돌보시는 레드라이트라고 한다. 뭐가 되었든지 간에 그런 걸 느끼는 순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거기서 벗어나고 봐야 한다. 지난 주에 남편이랑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메뉴판과 물컵까지 받고 단무지와 김치가 나오려는 순간처럼 말이다. 안에서 창문을 내다보던 사람은 손님이 아니고 종업원이었고 들어가서 보니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메뉴판은 이제 막 한글을 배운 사람이 써놓은 것 같은 조악함이 묻어났다. 그걸 누군가는 어센틱하다거나 키치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어정쩡함과 빛바랜 음식사진이 너무 우울했다. 보통 그런 경우에 음식가격이 황송하게 싸서 마음 속 갈등이 누그러지는데 그마저도 없는 미스매치. 그런 걸 느끼고 있는 2분동안 주방엔 온기는 커녕 인기척도 없었다. 결국 그 종업원이 음식도 한다는 말인가까지 생각했을 때 남편을 일으켜세웠다. 죄송하지만 다음에 오겠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어렸을 땐 그런 경우에 내 불경한 마음을 억누르며 괜찮을거야 괜찮겠지 괜찮잖아만 백번을 하다가 결국 욕을하고 나오기 일쑤였다. 역시는 역시이기 때문이다. 불길한 기운이란 그렇게 느닷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기 충분한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낯짝도 두껍게 단무지를 담는 사람을 두고 가게를 나올 수 있다. 그 집이 숨겨진 맛집이었을 수도 있다. 내 촉이 똥촉이었을 수도. 하지만 그런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는 것이 망조다. 망조와 싸워가며 맛을 봐야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한끼, 음식점 하나에만 촉이 맞아봐야 소용없다는 것이 문제다. 망조가 들기 시작하는 대상을 쉽게 벗어나기 힘들 때 어려움은 시작된다.

지난 봄은 나에게 무척 길고 어둡고 힘들었다. 애써 눌렀두었던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 더는 막아지지 않아서 스스로를 들들 볶느라고 진이 빠졌는데 다행스럽게도 중간에 깨달음이 왔다. 깨달음이 번개처럼 한 순간에 오면 좋겠지만 주저주저하며 미지근하게 도달했다. 그 날도 미워하는 그사람을 생각하며 마음속이 지옥이었는데 대상을 나로 바꾸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 사람이 제대로 일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가능한가. 아니다. 그럼 그걸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유가 많은 것 같았다. 어쩌면 하나도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럴 듯해 보이는 이유들을 걷어냈다. 공동체의 조화를 위해서 따위. 위악적인 이유들도 치웠다. 억울하고 샘나서 같은. 욕심이 없어서는 아니다. 그저 내가 받을 몫과 그가 받을 몫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다. 우리사이에 돈문제가 엮일 이유는 없었다. 주는 사람 마음이니까 내 영역 밖의 일이다. 그럼 왜? 나는 왜 가능하지도 않는 것을 원하면서 괴로워하는 건가? 나는 그 사람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은 과거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해도 잘지내고 싶었다. 그 사람을 좋아하고 싶었다. 내가 믿고 따를 만한 사람이길 아니 적어도 내 고민을 나누고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이길 원했다. 일에서 오는 고민 속에 외롭고 싶지 않았다. 내가 오해했기를 바랬다. 다른 사람과의 불화는 그들끼리의 일이기를 바랬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불가능한 것을 원한거다. 오만했다. 나도 내 스스로를 어쩌지를 못하는데 서른 중반의 어른 사람을 두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최종적으로 원한 것은 그렇게 변한 그와 내가 정답게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같이 무얼 하자는 것도 아닌 그저 소소한 한담이나 하자고 마음을 그 지경을 만든거다. 운전을 하며 헛웃음이 허허허허 나왔다. 그 사람은 죄가 없다. 심지어 일관적이고 자기가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걸 받아주고 방어해 준 사람들이 있지만 그게 그 사람 잘못은 아니다. 그럼 나는? 나는 잘못이 있다. 누가 좋아해달라고 했냐? 누가 훌륭한 리더라고 해달랬냐? 나 혼자 그래야한다고 끙끙대다가 나가떨어졌다. 허무하고 시원했다. 그 이후로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해피엔딩같이 느껴지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혼자 찧고 까불고 하던 마음만 거두었을 뿐, 달라진 건 없으니까. 보스는 방관하고 있고 직언은 듣지 않는 캐릭터니 이 작은 조직엔 망조가 들었다. 처음에 말했지만 그런 경우 벗어나야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에 애들이 이뻐지기 시작했다. 가르쳐야하고 부담이 되고 신경쓰이고 야단쳐야 할 대상이었는데 이상하다. 아이들이 인간적으로 이쁘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냥 그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버럭하고 화내고 후회하지만 무언가가 다르다. 나만 느껴진다는게 문젠데 뭐 애들이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또 걔네들 사정이고. 그래서 나는 또 이렇게 망조가 든 조직에 뭉개고 있게 되었다. 변명이 길다. 사실 다른 데로 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거기나 여기나, 이게 괜찮으면 저게 지랄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필드에 대한 나의 기대치는 여기가 최고였다. 마음의 평화와 바꾼 깨달음이란 이렇게 값비싸다. 이제 나는 동료들과의 마음을 터놓는 관계와 조직의 성장가능성을 포기하고 진정한 개인사업자의 마인드로 내 아이들만을 케어하는 좁은 반경으로 살아가야한다. 그렇게해도 얼마 못갈 것이라는게 조상님의 시그널이다. 어쨌든 알고 당하는 일이니 당황하지 않겠다. 이러니 지난 봄이 어땠겠는가. 이번 달 대자연의 주간 컨디션이 나빴던 데에는 이렇게 지당한 이유가 있다. 후회없이 당해주리 와라!


20190527 1일 1문




지난 금요일에 6개월마다 돌아오는 개별간담회가 있었다. 햇수로 4년, 만 3년이니 이 행사도 6번쯤 치뤘는데 이번에 역대 최다인원을 상담했다. 6시간 동안 30분 정도를 제외하고 계속 말을 해야하는 상황이어서 하기 전부터 심리적 압박이 상당했다. 없는 얘길 하거나 약을 팔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당일에 취소된 3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오셔서 무난하게 끝이 났다. 생각보다 중간중간 김밥이나 떡 같은 걸 먹을 시간도 있었고 화장실에 갈 시간도 있었다. 마지막에 부모님 두 분이 다 참석한 아이는 상담자체는 무리없이 끝났는데 시간이 갈수록 입맛이 씁쓸했다. 첫 신입상담을 원장님과 할때도 아빠까지 오셔서 어찌나 이것저것 다 따지시는지 우린 프랜차이즈 하나 하시려나 할 정도였는데 그 아이가 우리반이 되어 다른 선생님들이 보이지 않게 안도했다는 걸 안다. 이번에 보니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영어사용이 자유로운 것 같은데 아이가 그 환경에서 주눅들지 않고 이 얘기 저 얘기 하길 바라신다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숙제를 정확하게 인지하지도 않고 아이에게 지적을 하셨다는 부분에서 혈압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 그래도 소심한 아이에게 지적을 하면 그 아이는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모두 즐겁게 아무말대잔치를 할 때 조개처럼 다문 입을 열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절대 그러시면 안된다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다시 한 번 숙제부분 숙지하시길 당부했는데 과연. 엄마아빠의 지나친 관심과 고학력이 아이를 망치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이제 겨우 1학년인데, 파닉스를 배우는 겨우 9명이 수업하는 교실에서 "반에서 어느정도 하는 건가요?"를 묻는 학부모를 정말 오랜만에 본다. 하루종일 쌓인 피로가 그들이 나가자마자 곰처럼 덮쳐왔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오랜만에 두통이라는 친구가 찾아왔다. 어제의 말잔치때문인지 더운 날씨에 내내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인지 모르겠다. 날씨는 바로 여름 한가운데가 되었다. 이런 날씨에 감기들지 않고 버티는 것도 용하다 했는데 초기 감기증상일지도. 이발때문에 예약한 미용실에 가야했기에 한여름도시로 갔다. 긴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영화까지 예매해서 일정이 꽤 길었다. 결국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잠을 참으려니 두통이 심해져서 영화를 포기해야했다. 머리를 덥수룩하게 두더라도 오늘 서울까지 나오는 건 아니었다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집에 돌아왔다. 두통은 밤이 되어도 자고 일어나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진통제를 먹고 나서 나아졌는데 전처럼 위와 장을 모두 비워낼 때까지 낫지 않던 것에 비하면 차도가 있는 것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한약이나 한 팩 따서 마셨다.

3년차가 되어 원장님께 휴가와 연봉에 대해 생각해주시라 말씀드린게 한 달쯤 전인데 그동안 다른 스트레스때문에 가타부타 말이 없는 원장님과 거칠게 협상할 뻔 했으나 다행스럽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 기다리고 있었더니 지난 주에 답을 주셨다. 만족스럽다고 할 결과는 아니지만 어쨌든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하시니 알아주셔서 고마운 일이다. 종합소득세를 세무대리인에게 처음 맞겼는데 신속하고 깔끔한 처리에 전문가를 쓰는 일의 보람을 느꼈다. 지난 한주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나름 일년 중에 가장 바쁜 한 주였고 마음이 가장 날뛰었던 달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선방했다. 무엇보다 나만 일하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과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자에 대한 원망과 질투없이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그간 도반들과 읽었던 책들과 입씨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오는 월요일 아침이다. 덕분에 하루만에 서늘해진 공기가 어제와는 영 다른 세상이다. 상담했던 학부모들과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새기면서 다시 시작하는 길이자 이어지는 마디이다. 어제 통화한 친구가 그만두지 말고 계속 일하라고 다짐을 시켰다. 그러지 않아도 그만 두라고 할 때까지는 그만두지 않겠지만 글쎄 앞날을 어떻게 알까. 참고 참다가 꽤 아픈 훅을 날렸는데 그 친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일부러 시니컬하려고 하는 것 같진 않은데 자신의 삶에 어떤 애정도 느낄 수 없게 말하는 애에게 아이들이 아니라면 살아야 할 이유는 없는거냐고 십년은 더 살아서 뭐할거냐고 따지듯 물었는데 내게 그럴 자격은 있는건지. 난 네가 반짝거렸으면 좋겠어, 하고 말했던 한 때 친구였고 지금은 반셀럽이 된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그 때 나는 가만히 앉아 진흙탕에 빠진 기분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다. 때가 묻은 밥솥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내가 한 말로 그런 기분을 느낀 건 아니었기를 바란다. 어제 뭘 먹고 누굴 만나고 어땠는지 속속들이 알던 그 때와 같을 순 없겠지만 너무 멀리 왔구나 싶다. 그 애의 삶이 내가 모르는 반짝임으로 가득하기만을 바란다. 나 따위 몰라줘도 상관없이.


굿피플 본대로




티비 얘기 안 한지 너무 오래되었다. 하기야 모든 이야기가 그렇지만 하루에 적어도 3시간은 티비앞에 있으면서 할 얘기가 없을 수는 없겠지. 할 얘기는 많아도 할 수 없는 밥벌이이야기가 아니라면.

애증의 채널에이, <하트시그널>의 채널에이에서 같은 제작진이 로펌인턴들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름은 <굿피플>, 나는 리얼리티 짝짓기 프로그램의 노예인데 이건 남녀가 나오지만 그 사이의 케미에 대한 건 아니고 오히려 직장 상사와 후배, 동료 사이의 그것을 주제로 한다. 재미없을 것 같아서 보지 않다가 누군가의 추천으로 마침 1회를 보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신생로펌 파트너 변호사들의 나이였다. 서른 중반의 그들이 하늘같이 높아보인다. 날카로운 질문과 눈초리, 카리스마 쩐다. 인턴들의 막막함이 내 것 같다. 나는 여태 뭐하고 산거냐는 맥락없고 뜨악한 자괴감이 명치 끝을 눌러오지만 애써 넘기고 나면 제법 집중하고 볼 만하다. <하트시그널>에서 매 회 출연자들의 화살표를 맞췄던 것처럼 여기서는 매 회의 과제 1등과 2등을 맞춰야 한다. 멘토 변호사들의 평가를 듣고 유추해 내야 하는데 추리보다는 선배 변호사들의 평가와 토론이 백미다. 실제로 나보다 훨씬 어린 그들이 나보다 열살은 더 많이 살아온 사람처럼 느껴지고 하는 일에서 오는 감각이겠지만 논리를 갖추어 말하되 세심한 언변에 감탄한다. 스타일은 다 다르지만 파트너 변호사 개개인의 매력도 시청포인트다. 주인공은 인턴들이지만 아직은 병아리들이라 시간이 필요한 듯 보인다. 패널이 강호동이랑 이수근인 것이 엥?스럽긴 한데 보다보면 또 그런대로 푸근하다. 하트시그널 다시 하면 안 보려고 벼르다가 허를 찔렸다. 제법인데?

소소하게 <자백>도 보았고 박민영이 덕업일치하는 드라마에서 김재욱이랑 으른키스하는 장면도 오다가다 봤지만(진짜 하는 건 놀랄 일도 아니지만 와우 꽤나 열성적으로 합디다) 뭐랄까 <눈이 부시게> 이후로는 그냥 다 됐어, 그런 맘. 예능에서는 <슈퍼밴드>와 <놀라운 토요일> 그리고 <생활의 달인>을 본다. 이 간극 무엇? <슈퍼밴드>의 기깔나게 잘하는 애들을 보며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다만 의아한 것은 밴드엔 여자가 없나? 없어야 하나? 잘하는 여자들이 참가하지 않은건가? 내내 찜찜하다는 것. 주말에 재방송을 하도 해제껴서 보지 않을 수 없는 <전참시>와 <나혼자산다>는 전현무와 기안84부분을 스킵하며 설렁설렁 본다. <슈퍼밴드>에서도 꼭 사회자가 필요했었나. 그게 꼭 전현무여야했나. 그렇게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영혼을 쏙 뽑아 껍데기만 말하는 것도 재주라는 생각을 하면서 본다. 기안84는 볼수록 참으로 묘하게 비호감이라는 것. 악플에 시달려 공황장애까지 올 지경이면 본인이든 방송국놈들이든 좀 놔주면 좋겠다. 아니 그냥 이제 <나혼자산다>자체를 놔줄 때인지도. <생활의 달인>은 정말로 두 손을 모으고 봐야 함. 국수하나 만드는데 막 3일 걸려. 육수 하나 만드는데 모든 요리수법이 다 동원돼. 굽고 찌고 말리고 재우고 그슬리고 짜고 중탕하고 갈고 끓이고 조리고 씌우고 거르고 발효하고...더 있을거야 분명 여기까지 밖에 말 못하는 내가 밉다. 하여간에 그렇게 해서 만든 걸 30분도 안되서 먹어치우기는 하지만 그 순간을 위해 그렇게 어떤 일을 한다는 자체에 경외심이 든다. 그리고 요식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멀리멀리.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면 안되는 그 일. 요즘 <골목식당>은 백종원 혈압올리기 대회하는 것 같아서 패스.

개인적으로 분기마다 돌아오는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 달이라 티비라도 재밌는 걸 보고 싶었지만 나같은 애가 먹방까지 지겨워지니 볼 게 없다. 그래서 남편이 영화만 주야장천 보는 건가 싶고 재미있는 미드나 했으면 좋겠다. <왕좌의 게임>은 일단 마지막 시즌이라니 다 끝나고 몰아서 보는 게 나을 것 같고 예전처럼 <프렌즈> 같은거나 하면 좋겠는데 이제 그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유행이라면 돌고 돌아 이제 다시 올 것도 같것만.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누구라도 추천해 줄 미드가 있다면 도와주십쇼. <프렌즈> 때문에 넷플릭스 가입해야 되나 싶은데 유플러스에서 넷플릭스 볼 수 있다는 건 모지? 싶은데 전화해서 물어볼 의지까지는 안 생기는 걸 보면 가입해도 안 보려나 싶고 그렇다. 아 동아티비에서 날이면 날마다 해주던 때가 좋았는데.

뭔가 재밌는 글을 쓰고 싶은데 당최 재미난 일이 없는데다가 간신히 화를 억누르고 돌아서는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정신수양이 급급해서 자판을 두드리는 것 까지가 참 멀다. 한자도 못 읽고 있는 두꺼운 <오뒷세이아>를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 그리스신화고 뭐고 지금 다 무슨 소용이냐 싶다. 뒹굴거리다가 걸려든 김연수 작가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화장실에서만 읽는데 읽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생소할 뿐이어서 헛웃음이 다 난다. 저 책장의 책들이 다 무슨 소용이냐. 읽었거나 읽지 않았거나. 그래서 티비만 본다는 변명을 하자는 건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가? 하여간 일단 <굿피플>은 좀 봅시다. 보면서 같이 로펌 변호사들의 매력에 빠져봅시다. 믿어보시라니까?





꿈, 알 수 없는 지극히 사사로운

꿈을 꾸었다.

분당으로 이사 와서 두 번째 집이었다. 거기서 평생을, 아니 적어도 엄마의 평생을 보낼 줄 알았던 곳이었다. 1층이고 햇볕이 잘 들지 않았다. 내 방 베란다 쪽으로는 경비실을 마주하고 있어서 창문을 열어두면 그 앞을 오가는 사람들의 대화가 바로 내 귀에다 대고 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큰 나무도 많은 동네였다. 녹음이 짙어지면 숲속같은 정취가 있었다. 하지만 내 방 창으로 그런 큰 나무의 전체가 다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꿈에서 그 작은 창으로 커다란 나무의 주렁주렁 큼직하게 열린 과일들(한 종류의 과일이 아니다)이 보였다. 무려 사과, 복숭아, 포도, 청포도가 한 나무에 있다니. 어느 하나 빛나지 않는 열매가 없었다. 그렇게 선명하고 맛있어 보이는 과일은 냉장고 광고로도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꿈은 나의 어떤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일까. 무의식이 아니라면 그저 과일이 먹고 싶다거나 좋아하는 과일을 나열한 노골적인 의식일까. 내가 갓 결혼해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라면 태몽이 아닐까 설레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꿈에서 그 신비한 과일나무는 주인공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거기엔 사람도 있었는데 엄마와 나였다. 책장 앞에 않아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대상은 남동생이었던 것 같은데 책을 잘 읽지 못한다고, 너무 더듬거리고 답답하게 읽어서 걱정하는 엄마에게 책을 읽는 습관이 없다고, 전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글자만 읽어낼 뿐이라며 우리집엔 그 흔한 소년소녀문학전집도 없지 않는냐는 엉뚱한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었다. 여기서 내 남동생의 이미지는 무엇이며 소년소녀문학전집의 유무 또한 난데없다. 실제로 내 어린시절에는 우리집에 삼성당인지 뭔지 출판사의 소년소녀문학전집이 있었다. 거기서 소공녀같은 책을 침대에 누워 스탠드의 노란 불빛 아래 읽었던 기억도 어렴풋하다. 이제는 세 아이의 책읽기를 걱정해야 할 남동생의 독서능력을 걱정하는 대목도 우습지만 그게 소년소녀문학전집으로 해결될 일인가.

꿈이란 참. 아마도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그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오래되고 묵지근하며 해결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그런 꿈으로 나온 것일까. 그 과일나무는 무엇이었을까. 그림의 떡이었을까. 아파트의 공동재산인 과일나무들의 열매는 따먹을 수 없다. 감나무가 많던 그 동네 감들 역시 그랬다. 아무도 따지 않아 가지가 휘게 맺었다가 익어서 터지고 떨어져서 인도를 더럽히기나 했으니 그림의 떡조차 아니었다. 그러니 그 과일나무는 엄청 좋아보이겠지만 어느 하나 네 것이 될 수 없어, 꿈깨라 였을까. 쓰다보니 알겠다. 적어도 복권을 살 꿈은 아니라는 것을. 뭐하나 따서 입에 넣었다면 또 몰라.


11년 전 비공개로 잠겨진 싸이월드의 글 Oldies from Cy






짧은 여행.
5년전 쯤으로 생각되는 그 여행 그 멤버 그대로 재결성. 모든 것이 변했고 또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 같은 묘함 가운데 설렘을 동반한 가벼운 흥분을 뒤로하고 덧없다 덧없다 덧없다..가 눈이 오는 소리도, 벚꽃 지는 소리도, 냇물 흐르는 소리도 아니었는데 마음속에 내내 동동동 작은 북처럼 메아리친다. 인간은 외롭고 삶은 덧없는 것을 헤집고자 떠난 것은 아니었는데 마음은 어수선하고 여행은 싱거웠나니 밤새 개짖는 소리가 고단함 마저 덤으로 내주었다.
 
B가 물었다.
"아이만 보고 살 수 있을 것 같니?"
C가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딱 부러지게 그럴 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대답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짐작과 그의 진짜 대답사이에서 기억의 회로가 꼬여버린 것이리라. 그런데 정작 짐작하던 대답도 잊어버린 상황이라면 뭐하러 쉽지 않은 질문을 던졌을까. 쉽지 않은 세상 살아가기도 버거운데 괜한 질문 하나 더 보태준 셈이었으니 미안하다.
 
자기만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빠른 물살에 빠지기도 하고 노를 물에 빠뜨리기도 하겠지만 강을 건너야 하는 소임을 묵묵히 다하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다고는 이해할 순 있으면서 정작 가장 이해해야 할 가까운 사람들을 향할 땐 매섭게 몰아치는 사람들. 그냥 그렇게 약한 사람들.


그 여행의 구성원이 누군지, 어디로 갔던 건지 부옇다. 희미하게 짐작만 될 뿐이다. 아마도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그 드문 여행들 중에 기억도 하지 못한 여행. 글의 내용도 쓸쓸하다. 그들과 나의 관계처럼 우리들 사이로 바람이 웅웅 부는 것만 같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연휴의 끝이 왜이리도 피곤한가 의아한 가운데 잊혀진 기억이 쿵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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