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Sunset & Period 지극히 사사로운

6시 30분쯤이었나.
미용실 거울 앞에 샴푸를 하고 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하고 앉아 가운을 둘렀다.
왼쪽 편에 창으로 지는 해의 은근한 빛이 제법 강하다.
안경을 벗으면 엄마도 못 알아보는 시력이 되는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나 빛만은 감지하며 그 따뜻한 기운에 감격했다.
지는 해, 해지기 전, 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이상스런 취향이 있는 나는
막상 그런 순간을 자각하는 때에는 "행복"이라는, 지평선 저 너머에도 없을 것만 같은 이방인 같은 단어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말로는 표현안되는 4세미만의 감정이랄까.
왼쪽 뺨으로 햇빛을 느끼며 십년남짓 단골을 자랑하는 내 오래된, 아무말도 필요없이 그냥 앉기만 하면 가위를 들이밀 수 있는 정도의 믿음과
과묵하기까지 해서 더 좋은 미용선생님의 가위질 소리를 듣는 일이 세상에 다시 없는 행운처럼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어제는 친한오빠의 결혼식,
자기 결혼도 아닌데 당사자보다 더 업되서는 숙취의 끝을 보여준 남편이랑 같이 오지 않았어도 혼자 머리를 맡기고 앉았는 그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천천히 많이 마시고 물도 많이 마시고 간간히 안주도 좀 먹어준 나는 의외로 멀쩡해서
다시 전성기가 온건가 착각이 들기도 하나 그렇다고 경거망동할 때는 아니지.
내 몸이 그렇게 나에게 호의적이진 않다.
새벽 2시에 들어와 씻고 바지 벗다가 잠이 든 흉한 몰골을 한 양반을 좀 인간형태로 자게 만들어주고 새벽 3시쯤 잠들었다고는 하나
시댁에서 호방하게 낮 12시가 넘어 일어났다는 것은 숙취에 끝장이라는 숙면을 취한 덕분이 아니겠냐는 겸손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침은 물론 점심까지 드신 시부모님을 잠옷바람으로 만날 때는 대체 무슨 인사를 해야하는 걸까?
안녕히 주무셨어요는 장난같고 안녕하세요는 너무 멀다.
그렇다고 저는 잘 잤습니다도 안되고 해서 아주 찜찜한 기분으로 웅얼대며 화장실로 내빼는 도리밖에는 없다.

남편이 아주 많이 취해서 아침에 일어나 전날 밤 일을 기억을 못할 정도가 되면 나오는 버릇은 화내기다.
별 말이 아닌데 아주 신경질적인 태도로 말을 받는다.
어제도 그런 상태였기에 대학로에 버려두고 혼자 분당으로 오려다가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거두어줬다.
화만 내는 것이 아니라 혼자 막 걸어간다. 맞는 길로 가는 것이라 그냥 내버려는 두는데 뒤에서 보면 가관이다.
비행기도 아닌데 양팔을 쭈욱 펴고 날아갈 듯이 걷..는게 아니고 휘청댄다.
웃겨서 참...
그 모습 길이길이 남겼어야 하는데 어두워서 그러질 못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어머님께 깨알같이 일러바쳤다.
아버님도 같은 증상이시라며 격하게 동조...하시는 듯 했으나 결국은 몸이 견뎌내질 못해 그러는 거니 몸보신을 좀...으로 결론이.
일어나자마자 점심을 먹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버린 남편을 두고 홀로 미용실로 갔다.
호방하기 이를 데 없는 나는, 그래 너도 얼마나 힘들겠니 라는 마음으로 이불을 꼭대기까지 덮어주고 나는 간다, 하고 나왔다.

동부이촌동은 참 여러가지가 있는 동네다.
그 동네에 대한 나의 마음도 참 여러가지다.
갖가지 패스트푸드에 커피전문점에 새로운 것도 없는 동네다 싶다가도 지물포같은 가게가 떡하니 있고
일본어에 영어에 얼굴은 한국사람 같은데 참 이국적이기도 하고
아파트 숲이긴 한데 강변이라 삭막하지만은 않고
근 20년을 보아 오는데 같은 가게 같은 자리도 많고 새로운 가게들도 많다.
언젠가는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동네다.
정말로 동네주민이 되어 저녁 어스름에 어슬렁 어슬렁 동네를 걸어다니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모찌크림도 사먹고
우동도 사먹고(결국은 먹는 얘기)강변 마실도 가고 그러게.

친한오빠는 하와이에서 신나겠다.
숨은 조력자인 나는 비오는 글루미먼데이에 일하러 가는데 아오!
이로써 제짝들 만나 가정을 꾸리는 대단원의 막이 좀 내려진 듯 하다.
친한오빠는 막차탄 거 축하하고 그나마도 못 탄 사람들은...음...이제 나이 들어서 격하게 축하받기는 힘들 것 같아 미안하고 ㅎㅎ
어쨌든 즐겁고 이상한 기분으로 Period.

버스커버스커-여수밤바다를 위로삼다 지극히 사사로운



여수 밤바다 버스커버스커 아...좋다


http://www.youtube.com/watch?v=M4liqvxZFMs&feature=youtube_gdata_player

여수 밤바다에 가보고 싶다.
여수에 간 적이....누군가의 결혼식이었던가.
있었던 것도 같고 근처인 것도 같고
밤바다는 없었던 것이 확실하다.
아, 여수라...

휘몰아치는 주변상황들의 여파로 괜한 새우등만 고생들이다.
겨우 일단락은 되었는데
영 입맛이 쓰다.
이해관계의 양극단의 서로를 향한 음해와 비방이
극에 치달았던 아침엔
아 이것이 "추함"이구나. 라는 감탄아닌 감탄이 나왔다.

아침에 여수 밤바다를 여러번 듣고 간 탓인지
그 와중에 자꾸 이 멜로디가 웅얼웅얼 나왔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와중에 이런 멜랑꼴리한 노래가 나오다니.

보스가 바뀌었으니
다시 취직한 셈을 치면 되는 건가.
최악을 생각하고 조금 덜 실망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사람들 사이의 공격을 보고 듣고 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고 진을 빼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나는 이제 좀 평화롭고 싶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드라마를 쓰는 일도
일어난 일에 대한 과한 부풀림과 비약도 사절이다.
내 길을 가야겠다.

버스커버스커처럼,
여수 밤바다처럼,
조용하게
힘있게
은근하게.

음악이 위로가 된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는 음악을 한다는 것.
그래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
그래서 노래를 한다는 것.
모두가 가슴으로 와닿는다.
음악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내가 음악을 위로삼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고
내가 노래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유감이다.


건축학개론이라는 심한 봄바람 본대로

걱정을 했었다.
남편하고 봐도 되는 걸까.
결국은 같이 보고 각자 추억에 휩싸여 각자 따로 집에 오고 싶어지는건 아닐까, 하고

지난주엔 <말하는 건축가>라는 영화를 봤고(이 영화도 놓치면 아까운 다큐입니다)
지지난주엔 이 블로그 이름을 <기억의 습작>으로 바뀌었는데
이 영화가 개봉을 했다.
참 소박하고도 신기한 우연이다 싶다.

94년에 재수를 하고 95학번이 된 우리에게는 참, 영화가, 좋으면서도 모질다.
재수학원도 방학을 하던 그 며칠동안,
집 앞 독서실에서 틀어박혀 듣던 기억의 습작을
그렇게 우렁차게 울려대면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며칠을 못보는 건데도 사무치게 보고싶던 그 시절 남자친구도 떠오르고
재수하는 것도 서러운데 공부까지 열심히 하는 건 억울했던 나머지 재수생 주제에 춘천가는 기차까지 탔던 것까지...
더불어 세월에 더께가 앉아 왠만하면 꺼내지지 않던 찌질할대로 찌질하던 그 이별도 떠올랐다.

이스트팩과 잔스포츠와 통바지와 닉스, 더 베이직,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청바지들과
닥터마틴과 말도 안되게 타이트하던 쫄티들과 끝장을 보던 무더위 속의 신촌거리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연애학강의를 하던 납뜩이의 리얼함에 뒤집어지게 웃으면서도
(초반 "어떡하지 너?" 이 대사 하나로 완전히 압도되었다. 그 톤의 절묘함이란)
어두운 방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 숨죽여 울던 남자주인공을 따라 울기도 했다.

처음 연애감정을 느끼는 보통 남자애의 찌질함이란 언제봐도 참 엄청나다.
몰라도 절대 묻지 않고
추측은 곧 사실이 되며
꼭 자존심은 이상한 타이밍에 발현된다.
잘생기고 번듯한 배우가 연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욕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그렇게 찌질하고 쓸데없이 과묵하던 남자애들이 그 후에 뭘 먹고 무슨 일을 겪는건지
15년후엔 말끝마다 한마디를 안지며 토를 달고 유들유들한 농담이 청산유수가 되어 있다.
여자는 15년 전이나 후나 씩씩하고 행동력있고 천상여우인 것이 그나마 일관성은 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캐릭터에 감정이입하기 딱 좋았던 걸 보면
보편적인 인물구성에도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주인공들 같은 녀석들이 후딱 몇 명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다들 뭐하고 사는지 요즘따라 궁금하던 차에
티비에서 유희열씨는 청춘나이트로 90년대 유행가를 틀어대고
영화는 때맞춰 백투더90에 완전 감정이입하게 해줬다.
일상의 고단함은 여전하고
이리 살수도 죽을 수도 없다던 시절은 이미 많이 지나왔는데
그런 마음은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들고
좀 쉬고 싶어도 쉴수 없거나
정말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극간의 상황에서
어른들의 장래희망이라는 연애도 더이상 밝고 맑지만은 않은데
하물며 결혼생활이야... 팍팍함에 목만 맨다.

불신지옥은 못 봤지만 소문으로 잘 만들었단 소리는 들어봤다.
두번째 영환데 이렇게 세간의 오르내리는 영화를 만들었으니
참 장한 감독이 아닌가하고 생뚱맞게 칭찬한 번 하고.
추억은 방울방울, 가슴은 왈랑왈랑, 첫사랑 보고 싶은 거 절대 아닌데 눈물까지 그렁그렁하게 만들어줬으니
그런 감성의 풍요를 느끼고 싶은 분들 여유있게 극장에 가셔도 될 듯.
입소문 확실히 탄 것 같으니 성급히 막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

납뜩이처럼 말도 안되는 선무당같은 연애상담도 참 많이도 했었는데
그게 도움이 된 건지 안 된건지
애 둘씩 셋씩 낳고 잘 사는 친구들도 영화보면 첫사랑 생각 좀 하겠구나.
그렇다고 괜히 진심으로 연락하고 그러지는 말자, 우리, 인간적으로.
영화는 영화일 뿐.

아직도 마음은 파릇파릇 아픈데
그때의 우리가 추억이 되어 팔리는 걸 보며 우리의 나이먹음이 실감되서 한편 울적해진다.
그때 막연하게 뭔지 모를 부푼 기대와 설렘으로 꿈꿔왔던 미래의 모습이 지금 같지는 않았음을
굳이 고백하지 않아도 알것 같은,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보고 있던 극장의 관객들과는 초면이지만 정겨웠다.
다들 첫사랑의 기억으로 전화기깨나 만지작거린거 아닐까 괜히 혼자 상상해본다.


지극히 사사로운

친구가, 못 본지, 만나지 못한지 십년이 넘은 친구가 꿈에 나왔다.
그녀가 지금 어디에 사는지, 뭘 하고 사는지, 누구와 친한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바람결에 듣는 설화같은 이야기에 의하면
일부러 연락을 피하는 것 같다는, 그녀와 공통으로 알고 지내는 모두와 그렇게 멀어지기를 원하는 것 같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가다가 한 번씩, 너무너무너무 궁금하다.
사실 5년정도까지는 어쩌다가 간격이 조금 벌어진 것 뿐이라고,
사는 곳도 미국과 여기는 멀지 않느냐고,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 심각하지 않았다.
나도 바빴고
일도 많았고
그래, 아쉬운 지도 모르게 잊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날 애써서 연락처를 찾고 보니 모든 것이 바뀌고
요즘같은 초고속 통신망과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친구가 되는 신세계에서 우리는 완전 남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 전설같은 이야기를 물어물어 전해준 또 다른 친구는 일부러 연락을 피하는 애를 무슨 수로 찾냐며 그만하면 됐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말이 맞다.
백번 맞다.
그런데 궁금하다.
다른 애는 몰라도 그녀는 친구들을 멀리하고 혼자있기를 좋아하는 부류하고는 백만광년쯤은 떨어져있는 사람이었다.
매일 같이 먹는 도시락을 공부한답시고 딱 한 번 일찍 까먹었던 날 어찌나 화를 내던지 어의가 한참을 없었더랬다.
그런데 잠적과 잠수와 도피와 은신을 아우르는 그 무엇을 하고 있는게 그녀라니.
믿을 수가 없어서 궁금하다는, 걱정된다는 거다.
그러고 있어야하는 이유라면 그건 정말로 큰일이라는 이야기가 되니까.

어쨌든 그녀가 꿈에 나왔다.
꿈에서도 어찌나 반가웠는지 와, 드디어 만났다. 라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녀, 나는 재수생이고 그녀는 파릇파릇한 신입생일 시절의 말라깽이처럼 말라있었다.
뭐랄까, 그때처럼 열과 성을 다해 필사적으로 노느라 마른 것이 아니라
뭔가 피곤하고 아파보이는 분위기였다.
내가 너무 피곤했었나?
내가 너무 걱정을 하고 있었나?
별별 생각으로 꿈에서도 바빴던 나.
대화는 나눈 기억이 없다.
그저 잠깐 얼굴을 비추고는 사라졌다.
꿈의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꿈을 꾼 다음날,
오랜만에 운동을 하러 나간 아침,
2달을 추위때문에 녹슨 몸은 빨리 걷기따윈 해본 적 없다는 듯 삐걱거려서
걷는 건지, 뛰는 건지, 제대로 박자는 타고 있는 건지를 의식하느라 머리속이 비워지질 않았었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생각이 났다.
내가 그런 꿈을 꾸었다는 것을.
그런 날이 있다.
고등학교때 친했으나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누군가가 떠오르고
그 친구는 결혼해서 애가 있을까?
애한테는 어떤 엄마가 되어 있을까?
어떤 아내일까를 궁금해하는 날이.
그날도 좋아하던 선생님까지 생각이 나고
또 그가 나와 같은 해에 졸업한 동급생과 결혼했다는 얘길 들은 것도 떠오르고
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런 날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였다.
내가 그 친구의 꿈을, 그렇게 심란함이 묻어나는 모습의 그녀가 보였다는 것이 기억났다.

또다시 궁금했지만 여전히 내겐 방법이 없고
방법만 없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싶어하지 않음을 전해들었으니
일방적으로 연락을 한다는 건 폭력이나 마찬가지니 슬퍼졌다.

그날 직장에서는 더할나위없이 심란한 소식을 전해들었고
간만에 복귀한 직장에 대해 회의와 후회가 몰려들었다.
놀수는 없는 상태인 걸 확인했으니 다시 박차고 나올 수도 없고
이대로 당분간, 이렇게 불안한 상태로 이제 막 피어나는 봄을 맞아야 한다니 우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출근할 때나 잠깐 보는 하늘은 속도 모르고 참 파랗기만 하다.
제엔장.

꿈에 나온 너는 이젠 그런 용도의 메신저로만 나타나는 거냐?
완전 심란한 소식을 몰고 오는 그런?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친구들과의 교류가 떨어지고 있다.
갑자기 말레이시아로 떠난 한 명은 눌러붙었는지 올 생각도 안하고
친했던 친구 한 명은 정치인이 된 후로는 만나기가 좀 힘들어지고
남자녀석들은 결혼하고까지는 괜찮더니 애를 낳더니 술한잔 하기도 힘들어졌다.
골드미스들은 일하느라 바쁘고
전업주부들은 한창 육아에 힘쓸 때라 바쁘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대학교때부터 소원해져서 이제와 연락이나 되려나 싶고
이런 나이에 벌써 이 세상과 이별한 친구까지 있고
한 동네에 사는 친구도 미국에 사는 친구만큼 만나기 힘들다.
미국에 사는 친구는 이런 우리를 죽어라 욕하지만
막상 그녀도 이곳에 산다면 별 다를 건 없을 거라는게 내 주장이다.
워낙에 사교적이지는 않은 성격이지만 가끔씩 내 인맥도를 머릿속에 그려보자면
그 휑하고 스산한 몰골에 척추가 쭈뼛할 지경이다.
결국 나는 꿈에 나온 그녀 덕분에 참 많은 회한을 하게 되었다.

건축학개론이 재밌다는데 딱 그 시절, 기억의 습작 때의 이야기라니
벌써부터 왈랑왈랑 개왈랑할 준비시작이다.
보고나면 이제는 멀어진 많은 그녀들과 그들이 떠오르겠지.
첫사랑보다 옛친구들과의 수다가 더 그리운 요즘이다.

연민에 대하여 지극히 사사로운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인 것 같다.
입밖으로 내 본 적도,
글로 써본 기억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자려고 했지만 배가 너무 아파서(고질적인 생리통은 정말 진저리가 난다)
동료 한 분이 아이패드를 무용지물화하는 내 능력을 불쌍히 여겨 알려준 앱으로
티비를 보다가, 그것도 언제나 다시봐도 즐거운, 요즘엔 파업으로 몇 주째 불방인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다가
식어버린 핫팩을 데우러 다녀오는 길에
조카들의 어린이집 가방을 들추어 수첩을 훔쳐보았을 뿐이었다.
훔쳐보았다지만 늘 보는 것이었다.
매일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별 일은 없었는지를 체크하고
은근히 재미있어서 빼놓을 때면 밀린 부분을 몰아서라도 기어이 보고야 마는 편이다.

오늘의 선생님 메모,
식구들이 모두 바쁘신 건 알지만
요즘 엄마가 언제 오느냐고 자주 찾고
선생님이 먼저 갈거냐고도 묻는단다.
왠만하면 자기가 퇴근하는 5시 30분까지는 아이가 하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조심스런 말씀이시다.
이제 4살, 만으로는 3살도 안된 애기가 오전 10시도 안돼 어린이집에 가서는 저녁 어스름에야 집에 온다.
그런데 그마저도 동생부부가 같이 퇴근을 하는 요즘엔 더 늦어진 모양이다.
그때였다.
연민이란 생뚱맞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왜 삶은 갈수록 어렵고 힘들고 벅찬 것일까.
조카도 안쓰럽고
그 어린 것들을 맡기고 일을 하는 올케도 그 속은 말이 아닐거고
그 식솔을 거느린 가장노릇하는 동생도 얼굴이 까매서 다닌다.
엄마는 동생부부가 더 늦게 오는 날에는 일을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와서 저녁준비하랴
애들 데려와서 엄마찾는 녀석들 비위맞추고 저녁 주고 어르고 달래다가는
종당에는 못 참고 버럭 한 번쯤 해줄 때쯤 제 부모가 오는 모양이다.
엄마아빠를 보면 처음엔 반갑다가도 늦게 온 게 섭섭해 떼를 쓰다 혼나기도 엄청 혼나는 요즘이었다.
요즘 다시 직장을 다니는 나는 이 모든 일에 열외일 수 밖에 없다.
엄마는 일을 하는게 애 보는 거보다 나으니 암말 말고 니 일이나 잘하라며
애 둘을 한꺼번에 보는거 힘들지 않냐는 내 말에 동문서답을 했었다.
그러던 중에 선생님은 이런 메모를 전하신거다.

타고난 것이나 후천적인 훈련으로나 눈물주책이 거의 강부자 수준인 내가 이 상황에 눈물을 빼놓았을리 없다.
결국 핫팩을 끌어안고 눈물을 찍어냈다.
생리통에 아픈 배에 해줄 것도, 위로도 안되는 남편은 옆에서 코가 없어지도록 골며 자고 있는데
핫팩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 내 모습이란.

요즘 4살 녀석이 말도 많이 늘고 어찌나 곰살맞은지 못하는 대화가 없다.
너무 빨리 자라버려서 아까울 때도 있고
더 아기 때의 모습을 잊을까 부러 기억을 꺼내어 들출 때도 있지만
말을 잘하는 만큼 뺀질거리고 말을 안들을 때도 많아서 곡소리도 많이 난다.
엄마 아빠 할머니도 모자라 고모와 고모부까지 훈수를 두는 대가족이다.
고모란 작자의 훈육은 악명높고
고모부란 위인의 대쪽같은 성품엔 바늘도 들어가지 않는다.
물고 빨고 하며 첫 정이 들어 하루라도 안보면 보고싶었다고 낯간지러운 고백을 하는 고모에
퇴근하고 지쳐도 다정하게 동물책을 읽어도 주는 고모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고작 4살인데 4살이나 먹은 것일까.
고단한 인생을 시작하게 한 것만 같은 미안함은 무엇인가.
일을 하며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사는 것은 왜 이리 고된 것인가.
왜 아이들이 집에서 책을 보고 대화하고 취미생활에 힘쓰고 어울려 놀이를 하는 일에 몰두하면 안되는가.
무한경쟁에 무한입시에 몰려진 대부분의 아이들이 목적도 없이 휩쓸려 다니는 통에
눈동자에 촛점을 잃고 이미 늙어버린 아이처럼 말한다.
뭐라고 위로할 지 모르겠는 마음인 동시에 먹히지 않는 잔소리라도 해야하는 이중적인 역활이다보니
나도 나의 정체성의 혼돈이 오곤 한다.
이것이 연민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내 집의 가장 작고 힘없는 어린 인생들이 잠시나마 엄마가 오지 않는 불안을 느끼고
친구들도 엄마 손잡고 떠나가고
선생님마저 먼저 퇴근한 어린이집에 남아 외로움을 느꼈다고 생각하니
나같은 사람마저 연민이란 말을 올린다.
작은 일일 수 있다.
물론 세상엔 더 힘들고 더 힘없고 더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내겐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속이 상한다.
어린이집 수첩을 읽어내려가는 짧은 순간
어린 시절 심장을 죄어오거나 불안으로 죽고만 싶어졌던 기억의 조각들이
나의 가장 약하고 민감한 부분을 예리하게 찔렀다.
이것은 상처도 아닐 지 모른다.
살면서 겪어내야 할 만장같은 일들을 생각하면 웃음거리도 안 될 것이다.
그런 일들을 지나며 나이를 먹고 무뎌진다.
하긴 그래야 산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토록 상처받을 줄 알면서 해야하는 많은 일 중 하나일 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센척 하지만 나는 그런 각오를 할 줄 모른다.
애보다 먼저 무너질지도 모를 위인이다.
상처받을 때마다 처음인 것 처럼 아플 사람이다.
나라면 참아내겠지만 내 아이라면 그렇게 못 할 것 같다.
유별에 유별을 더할 것이다.
아마도 나는 내가 그럴 것이란 걸, 적어도 무의식으론 알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순순히 무자식 계획에 동의했던 걸 보면 말이다.

아이도 어른도 노인들도 모두 불쌍한 시대이다.
어떻게 굴러가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는 마음으로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내일은 어린이집 가기 전 아침이라도 재미있게 놀아주어야 겠다고,
무슨 말을 어떻게 안듣고 저지래를 해도 호랑이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만이 내가 할수 있는 전부이다.
이렇게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나도 내가 안되었다.
하루는 더디가는데 일주일은 쏜살이고 한달은 하루처럼 가곤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는데 나는 손을 놓고 멍하게 하늘만 보는 멍청이 같다.
곱고 촘촘한 결이 쌓여야 할 아이들이 자꾸 눈이 밣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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