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숙취의 날 지극히 사사로운






일주일만에 날씨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지난 주 토요일에 서울에 나갔다가 서울역의 태극기부대의 짜증나는 행렬때문에 강제로 버스하차를 당해서 남대문까지 걸어갈 때 느꼈던 그 숨막히는 사막의 열기는 환상이었다고 해도 믿을 법하다. 그저께 밤, 회식에 참여한 후 탄천 옆길을 걸을 때 스치던 바람의 온도가 달랐다. 절기란 정말 과학이다. 정말이지 처음에 일년이 365일라는 걸 어떻게 발견한걸까. 새삼 놀랍다.

가을이 저어기 서현역쯤에서 어슬렁거리며 게으르게 오고 있는 느낌이다. 밤엔 귀뚜라미가 운다. 왠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손편지라도 띄워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등짝을 보이며 모니터를 보고 있는 남편이랑 티브이를 사이에 두고 연예인을 씹거나 엉성한 드라마의 연출에 혀를 차거나 채널을 두고 싸우거나 오고가면서 시비를 걸고 걸릴 뿐이다. 어찌보면 한가로운 나날인데 자세하게 보면 또 나름의 굴곡이 있다.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기어이 전면에 나서게 만드는 일이랄지. 회식에서 들으니 나의 이미지란 정말 어마어마하다. 숨긴다고 숨겨지는게 아니었다. 조용한 줄 알았는데 카리스마 쩐다거나(네?) 알고보면 제일 강하다거나(대체 어디가?) 독일인같은 이미지라거나(뭐지? 노잼이란건가? 차갑다는 건가? 철두철미하고? 쓸데없이 진지한가? 스타일이 꽝이라는 건가? 꽉 막혔다는건가? 평생 가보지도 못한 나라의 사람같다는 소리를 듣다니 진짜 황당, 프랑스로 가란 소리까진 들어봤어도 그 이웃나라 독일은 처음) 완전 마이웨이라거나 (이건 또 뭐야??? 나 돌아이인거야?) 술을 마시고 편한 상태에서 나눈 말들이니 순도 98% 정도의 속마음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남들에게 나는 그냥 이렇게 보이나보다. 이런 와중에 참고 참다가 방만하고 게으른 관리에 대해 내부고발 비슷한 걸 했으니 모두가 알게 된다면 음 역시, 그러려나. 독일인같고?

뭘 기대한 건지 모르겠지만 회식이 끝나고 나니 더 착잡하고 울적해졌다. 아무일 없는 것처럼 웃고 떠들고 나서 밀려오는 허무함인지 덧없음인지. 포기하는 마음으로 먹는 술은 더이상 흥겹지 않고 기다려지지 않는다. 그런 날들은 영원히 끝난 것 같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영원한 젊음은 없고 영원한 여름도 없으니. 몇년 만에 취한 채 천천히 길을 걷는 밤이었다. 선선한 바람결에 한 시기가 지나가는 것 같은 종결의 냄새가 났다. 그 맺음이 나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바뀌지 않을 거라는 우주만물의 완고함과 나의 무력함도 함께였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취기가 쑥쑥 더해졌다. 집에 도착했을 땐 호기롭게 마신 소주잔을 헤아리며 후회했다. 쫄보가 되어 급하게 숙취해소약을 먹어봤지만 이미 울렁대기 시작한 후였다.

다음 날은 무려 11시30분에 절대! 늦으면 안되는 점심약속이 있었다. 절대 늦으면 안된다는 건 식당의 말이었다. 그러니 이 정도의 숙취는 이겨내야 한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을지로의 인쇄소가 밀집된 오래되고 위험하게까지 보이는 건물들 사이에, 음식점이 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곳에 있을수록 힙하다고 하는게 요새 유행인가 보다. 늦지도 말라더니 시간이 될 때까진 입장도 안된단다. 세상 까칠한 수순이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전기선이 허공에서 어지럽게 얽혀있는 좁은 골목에서 인쇄소지게차들을 피해가며 서있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맛만 없어봐라,벼르게 한다. 결정장애가 있는 동서들 사이에서 떠밀려 추진하게 된 약속이었다. 힙하다고 하길래 접근성까지 따져 일치감치 예약을 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내 속부터 달래야 했다.

누구도 늦지 않았고 속도 대충 달랬지만 최상의 상태가 아니어서 음식맛을 제대로 느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까다롭게 잡아도 오무라이스는 맛있었다. 인스타그램에는 그 집 오무라이스의 계란이 예리한 칼에 갈라지고 흐르듯 퍼지는 동영상이 넘쳐난다. 그걸 위해 서버는 영상을 찍으시겠냐는 질문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찍었다. 여길 다시 언제 올지 모르니까. 그 동영상을 프랑스까지 가져가야 하니까. 이유가 뭐가 됐든 손가락만 놀리면 되는 일이니까 대표로 큰동서가 했다. 영상은 관심없었지만 계란도 맛있고 안에 버무려져 있던 밥이 정성스러워서 좋았다. 그렇게 어려운 메뉴는 아니잖아 하면서도 자꾸 손이 갔다. 안전하게 테이블마다 먹고 있는 메뉴들로 시켰다. 모험은 이런 날 하는게 아니니까. 매운 크림 파스타는 딱 상상되는 맛 그 자체였는데 크림과 내 위장상태 역시 미스매치 그 자체였다는게 문제였다. 가츠산도 역시 위장에서부터 거부하는 바람에 맛도 보지 못했다. 일본에서 살다 온 막내동서의 말에 따르면 일본 동네 빵집이나 편의점의 가츠산도가 더 낫다고 한다. 이런 날은 콜라의 날이니 콜라를 집중공략했다. 역시 조금 나아졌다.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몇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공통의 화제가 넘치는 관계였다. 같은 성씨의 남편을 나누어 가지고 그 남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만 가지고도 며칠은 떠들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을 두고도 서로서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또 각자에게서 새롭게 알게 되는 사건들 역시 다양했다. 그걸 뒷담화라고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굳이 남편들을 떼어놓고 니네끼리 만났구나 하겠지만 뭐 그렇게 얼굴 붉힐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안타깝고 뾰족한 답이 없고 언제까지나 반복될 일들이라 이야기끝이 상쾌하진 않았다하더라도. 지금도 프랑스에 사는 큰동서가 방학에 잠깐 들어와 있는 동안 모일 수 있었는데 그동안 막내동서네도 남들이 쉴 때도 일해야하는 생업에 종사하느라 명절에도 만나기 힘들었기 때문에 결혼한지 십년이 되어서야 모인 완전체 동서모임이었다. 그러는 동안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마지막 숙취조차 사라졌다. 역시 마법의 오후 5시였다.

완벽한 숙취란 어떤걸까. 완벽하게 망가지는 걸까. 완벽하게 멀쩡해지는 걸까. 후자로 본다면 이 날을 "완벽한 숙취의 날"로 이름붙일 수도 있겠다. 힘들게 시작한 하루지만 점점 나아지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말끔해졌으니까. 집에 있어도 되는 날이었다면 괜히 엄살을 떨며 해가 다 떨어질 때까지 방구석에서 내 술냄새에 내가 괴로워하는 미련한 짓을 거듭했을지도 모른다. 시작이 순조롭지 않은 어떤 일도 괜찮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수다가 분해되지 못한 불쾌한 알코올의 기운을 날아가게 했던 것처럼. 살아가는 일이 이렇기만 하다면야 월요일부터 쏟아붓는 폭우 속에 출근을 해야하거나 휴가 첫날부터 타이어의 바람이 빠져도 사람 좋게 허허 웃을 수 있을까. 이런 자문에 이제 더이상 단호하게 절대 아니라고 자답을 할수는 없다. 그런 세월을 지나왔다. 웃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깨 한 번 으쓱하며 긴급출동서비스를 부르고 어차피 늦은거 커피라도 한 잔 마실지도. 여전히 나는 느긋한 쪽은 아니지만 서두르는 내 모습을 관망할 수는 있다. 어 또 그러네? 안그래도 될텐데, 하면서.

5년 전 여름, 깨끗하고 작은 병원에 친절한 의료진들의 보살핌아래 며칠을 보낸 적이 있다. 그해 여름휴가를 그렇게 썼다. 진통제없이는 견딜 수 없던 날들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했던 나아진다는 희망만 가득차 있던 그 밤이, 그 낮이 내게는 좋은 장면이다. 사람은 보장된 희망이 있다면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는 존재라는 걸 그 때 알았다. 그 이후에도 자주 홀로 병실에 있던 그 때의 내 모습이 나를 찾아왔다. 그런 날이 있었지, 그 때 참 좋았지, 평화로웠지, 태어나 겪었던 최고의 통증 한가운데에서 이상하게도 좋았던 그 아이러니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거나 너무나 복잡해 피하고 싶은 순간마다 떠올려졌다. 추억으로만 남으면 좋겠지만 다시 겪어내야 한다. 좋은 추억이라고 해서 다시 하고 싶다는 얘긴 아니었다고 해명할 수도 없고 베이비 원모어타임 할 일이 따로 있지. 그냥 어깨 한 번 또 으쓱하고 한없이 부산해지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어떻게 되겠지.





20190802 1일 1문





누가 뭐래도 콜라는 나에게 "약"이다. 그리고 이 땡볕에 굳이 나가서 콜라와 이온음료를 사왔다는 건 어디가 많이 불편하다는 뜻이다. 콜라가 나에게 약이 되기 위해 지켜져야 할 가장 큰 조건은 남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잘 마시지 않아야 함은 물론 약으로 마실 땐 "이게 약이다" 라는 강한 믿음으로 경건하게 마셔야 한다. 휴가 끝나고 출근한 첫 날, 믿어지지 않는다며 문고리를 붙잡고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그렇다쳐도 진짜로 몸이 아파진다는 건 또 다른 종류의 거추장스러움이다. 두통이 스물스물 시작되더니 퇴근쯤에는 순간이동해서 내 방 침대에 누워야 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주말을 껴서 단 5일을 쉬는, 일년에 한 번 있는 휴가였고 비가 하염없이 왔다. 다른 날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마지막엔 천둥번개까지 곁들여주니 마른장마라고 입방정떨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와야 할 양은 오게 되어있는 걸까. 작년 휴가 첫 날에 쏟아붓던 비에 우산도 없이 쫄딱 젖어서 길거리에서 빅파이트하고 씩씩대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그랬지, 이런 날 집에서 오는 비나 구경하는 상황이라면 좋았을 거라고. 그걸 이렇게 보란듯이 실현시켜주다니 참 위트가 있으시구나. 그래 어디 한 번 좋아해봐라, 이러는 건가? 강식당에서 입방정떨던 멤버들을 향해 "모두 입조심해요~"하던 이수근이 생각난다. 입조심을 했다면 달라졌을까. 그럴리가. 

이번에는 아무데도 가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집에서 보내자고 일찌감치 의견일치를 봤다. 소소하게 영화를 보거나 서울에 간 김에 미술관도 한 번 갔다가 탕수육에 짜장면도 먹고(그동안 짜장면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역시 짜장면은 누가 먹는 걸 볼 때 가장 맛있게 보인다는 결론) 맛있다는 커피도 찾아가 마시고 했다. 의무감에 분야의 책도 몇 권 샀는데 휴가 때 그런 걸 보는 건 재수없으니까 그냥 사놓기만 했다. 다람쥐 토토리쟁이듯 유명한 집 떡볶이를 수소문해서 냉동실에 넣어놓고 뿌듯해했으며 한약먹기 시작했을 때 만난 친구를 한약을 끊고 2년만에 만나 수다도 떨었다.

그러는 동안 몇백 번을 다녔던 이런 저런 길들을 걸었는데 뭐라고 해야할까. 20년만에 20대와 진짜 이별을 한 기분이라고 할까. 유난히 그 때 칠렐레 팔렐레 깨방정떨며 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면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내게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은 유용하지 않았다. 마음이 청춘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있었다 치더라도 늘 몸보다는 마음이 먼저 약해지고 죽을 것 같고 엉망진창이 되었으니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늙은 자가 나일지도 모른다. 몸이 나아지면, 다시 술을 마시게 되면 흥겨울 줄 알았는데 그 기대와 희망이 쿠크다스처럼 나약하게 부서졌다.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의 나를. 하루아침에 20년동안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군다는 것이 어이없으면서도 반백의 나를 낯설게 바라본다.

그래서였나. 20년 전의 요정들이 캠핑을 떠나 못 알아듣고 밤빵을 먹고 맥을 끊고 코를 골고 소변통을 쏟고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뭐라고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 때 그 사람들"의 지금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야 새로울 것 하나 없는데도 말이다. 누가봐도 화려했던 화양연화를 지나 온, 혹은 아직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를 그들 누구의 모습도 나와 비교할 순 없는데도 인생에 대해 청춘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조우하게 되다니(그것도 예능을 보면서). 아이피티비의 수백개의 채널을 생각없이 순회하다보면 30년전 20년전 드라마들이 나온다. 재수할 때도 티비만 봤는지 차인표의 데뷔작이라든지 우도의 아름다움과 대학생의 로맨스가 어우러졌던 [느낌]같은 드라마는 어느 장면을 봐도 그 시절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나같은 애도 꿈과 희망을 어느 구석엔 숨겨두고 있었을 그 시절. 20년 후에 이렇게 살고 있을거라고 상상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어마어마하게 다른 걸 기대하지도 않았으며 "남들처럼 산다"는 말을 의심스러워하면서 어떤 의미에서건 남들처럼 살지는 못할거라 짐작했던 그 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더 잘할 수 있을거라 확신할 순 없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남아도는 에너지로 잡다하고 얕은 호기심을 만방에 펼쳐놓고 어느 곳에도 제대로 머물지 못하던 내가 그것들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좀 더 훌륭하고 값진 일을 할 수 있을지, 그런 일이 있기는 한지 여전히 모르겠다. 유난히 과거의 내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걸리적거리는 휴가를 보냈다. 기분이 묘하다고만 하기엔 부족하다.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것을 표현하고 싶지만 그게 어렵다. 이 모든 것이 호르몬의 조작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의 널뛰기. 갑자기 너무 울적하고 세상 모든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고(내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의미가 없긴 하다) 다 놓아버리고 싶고 다 귀찮다가 또 갑자기 누군가가 엄청 만나고 싶어지는 미친 증상. 그런 감정상태로 과거의 내 모습을 돌아보자니 그것만으로도 울고 싶고 웃게 된다. 그게 이미 많이 지나왔다는 사실이 징그럽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온걸까. 

약이 되는 콜라를 수업하며 내내 마신 덕분에 두뇌의 반을 잠식하던 두통이 관저놀이 부근 반창고만한 사이즈로 줄어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나 아직 거기 있다고 거들먹거리면서. 그래도 금요일이다. 주말엔 별 것도 안하면서 내내 주말만 기다리는 것도 웃긴다. 하지만 일하러 나와 애들을 보면 힘이 나기도 한다. 오늘은 이제 막 파닉스를 뗀 애기가 기분이 좋았는지 방실거리며 나한테 뭐라고 시비를 걸었는데 내가 알아듣던지 말던지 조근조근 이러저러한데 이러저러해서 그런건데 너는 그럼 이러저러한거니? 라고 했더니 듣고 있던 다른 애들이 조용히 "티쳐 윈." 이라고 해서 빵 터졌다. 오바해서 양 팔을 들어 환호했더니 깔깔깔. 그냥 이런 순간들을 위해 사는건가 싶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횟수라는 말도, 감정이 아니라 습관이라는 말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인가. 내 행복에 지분이 없는 사람처럼 사는 건 멍청한 짓이다. 의무나 책임이나 성실도 우선순위에서 행복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되는 인간이었다. 결국엔 아프고 병이 나고 모든 걸 다 때려치우는 정도까지 가서 멈춘다. 바보짓도 그런 바보짓이 없다. 조금 나아졌나 싶었는데 사람 고쳐서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이 걸린다. 나는 고쳐질 것인가. 

누구에게도,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 하지 못할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마음을 짓누를 때가 되어야 쓴다. 나에게 대나무숲같은 걸까? 그런데다가는 사랑고백이나 하는 거 아닌가? 고백할 일이 없는 나는 이렇게 산뜻하지도 유용하지도 않은 글이나 쓴다.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인가. 나는 요새 너무 빈정이 잘 상하고 섭섭하고 재수없고 다 까고 싶고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싶다가도 이 모든게 다 내 잘못인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매일매일 완패하는 기분이다. 애들한테 이 기운이 나오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막고 있다. 참 어려운 여름이 지나간다. 





빵이나 먹어! 지극히 사사로운





남편이 코를 심하게 골아서 귀마개를 하고 자도 잠을 설칠 정도라 경추를 지지해준다는 비싼 베개를 샀다. 첫 날은 잠을 설쳤다고 투덜대더니 오늘은 눕자마자 잠들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초반에 몇 분 가랑가랑 귀엽게 골더니 다시 엄청난 데시벨로 돌아갔다. 잠자기를 포기하고 컴퓨터를 켰다. 망했다. 내일은 비몽사몽하겠지만 그나마 토요일이라는게 위안이다. 어이없는 시간에 일어나 앉은 김에 글을 쓴다. 그나저나 베개는 비싼 값을 하는거야 마는거야.

아는 사람은 아는 나의 오래된 병으로 만 2년 한약을 먹어왔는데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결과를 받았다. 간만에 근본적인 삶의 회의와 비탄이 몰려왔다. 세상은 어차피 공평하지 않고 이 병이 내가 한 잘못이나 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왜 내가? 내가 뭘 어쨌다고? 등의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2년이나 음식까지 제한하며 약을 먹어왔는데 받은 결과치곤 가혹했다. 그간 못 먹은 음식들이 억울한 건 아니다. 결과가 이러하니 오히려 그런 건 뒷전으로 물러난다. 어떤 치료든 케이스마다 다를 수 있다. 게다가 아직 발생이유도 명확하지 않고 치료약도 나오지 않은 상태라면 의사나 한의사나 근본적으로 어둠 속을 헤매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의사들은 절제하거나 태우거나 혈관을 막아 괴사시키던 직접적으로 그 조직을 없애던 물리적인 시술을 하지만 늘 재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한의사들은 병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있다고 보는 쪽이고 이론적으로는 그걸 막으면 호전이 되어야 하는데도 그게 나에게는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한약을 먹으면서 많은 걱정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뚝심있게 버텼다. 보통 이런 경우 해피엔딩이어야 하는데. 최근 증상이 심해지는 것 같아서 내심 작정했던 몇년 전 받았던 시술은 검사결과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다른 치료와 다른 시술을 받기며 폐경이 될 때까지 버티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폐경이 되기를 이렇게 학수고대하게 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비극이다. 이렇게 마음 졸이고 불안하고 스트레스 받으며 보내야하는 시간이라니 마치 내가 나인 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만 같다.

다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면 꼭 첫잔은 핸드드립으로 마시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주가는 카페에 갔다. 수업전이라 늘 테이크아웃만 하던 곳에서 핸드드립을, 그것도 2년동안 디카페인만 주문하던 손님이 마시고 가겠다고 하니 알바생이 동요하는 눈빛을 보냈다. 기왕이면 사장님이 내려주는 커피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가 자리에 없고 나는 당장 오늘의 수업들을 해내려면 무언가 위안이 될 것이 필요했다. 아이들에게 떨어지지 않는 텐션을 보이고 나도 거기 속아 넘어갈 수 있는 그 무엇. 어제라면 커피로도 안 됐을 화와 실망이 오늘은 그저 시간이 조금 흘렀을 뿐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데도 조금 너그러워졌다. 한약을 먹고 병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고질적인 두통과 소화불량은 나았고 좋은 성분들로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괜찮아졌다. 아니, 사실 그냥 내 맘 편하자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이렇게 마음 먹지 않으면 너무 괴로우니까.

병원에서 치료계획과 일정 등을 조율할 때 그깟 장기 떼어버릴까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했다. 떼어내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그래도 보존해보는 데까지는 해보자는 의사와 상담사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분노에 그놈의 장기가 활활 탈 정도였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거냐 대체 넌. 그 정도 했으면 좀 봐줘야 하는거 아니냐. 그렇게까지 억척스럽게 활발하게 살아갈 일이냐. 별별 욕이 다 떠올랐다. 고작 두 주먹밖에 안되는 게 그 속에서 그렇게 말썽이라니 인체의 빌어먹을 신비다.

이런 상황에서 강식당이랑 검블유를 보며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 [WWW]를 보면서 대사의 찰짐에 감탄하고 시원한 피지컬의 배우들의 훤칠함에 눈을 정화한다. 물론 그 드라마에서는 마세라티가 택시보다 흔하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그걸 타는데 소시민인 나는 타보기는 커녕 실물을 본 기억도 없으니 때론 설정이 과하긴 하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다큐가 아니니 그 정도는 애교다. 고정된 남녀의 역할을 뒤집는 장면이나 대사가 많지만 억지스럽지 않게 잘 끌고 간다. 무엇보다 웃기다. 그게 최고다. 흔한 삼각관계도 여자 셋의 그것으로 묘하게 가져다 쓰는데 마냥 동성애코드로 보이지도 않고 낯설지만 신선하다. 최고의 발견은 이다희. 원래 그렇게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무엇에 호감은 아닌데 웃겨서 그런지 너무 맘에 든다. 지난 회에 임수정이랑 침대에 누워 롱테이크로 찍은 대사는 웃기지도 않는데 너무 좋았다. 특히 "삶은 징그럽게 성실하고 게으른 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죠". 이다희가 내게 이렇게 발견된 건 연기력이 좋아서가 첫번째다. 웃기고 예뻐도 가짜는 안되니까. 음주연기의 진짜가 나타났다. 살면서 그렇게 무서운 "언니"는 처음 들었다. 그렇게 부르면 옆에 눕지 않을 수 없다. 손만 잡고 잔다는 말도 믿어서가 아니라 무서우니까 믿는 척 해야지. 남자배우도 아니고 여배우에게 이렇게 빠지게 되다니 벌써 호르몬의 장난이 시작된건가.

장마를 기다렸던 건 아닌데 그래도 와야 할 때 안오니까 찝찝하다. 지구가 제대로 아픈건가 싶고. 장마가 왔다가야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인건데 이건 본게임 시작도 안한 느낌, 그래서 더 불안한. 그렇다고 덥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작년에 겪은 어마어마한 비교대상이 있으니 이걸 무더위라 부르기엔 애매하다. 이십며칠 연속으로 열대야가 지속되던 때가 이맘때 였다는데 현재 아침저녁으로는 꽤 쾌적하다 싶으니까. 더럽게 성실한 내 자궁내막세포들의 열일덕분에 게으른 나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할 돈도 없어서 이번 휴가는 강제반납당했다. 집 근처 카페나 가서 죽치고 있을 내가 보인다. 호르몬의 여파가 어떨지 모르는 상황이라 얌전히 처분만 기다린다. 이렇게까지 나에게 집중하고 싶진 않았는데 이렇게 되고 나니 주변에 누가 뭘하든 자동으로 신경이 꺼진다. 사람이 참 이렇게 얄팍하고 한치앞을 모르면서 다 아는 것처럼 산다. 그래서 결국은 현재에 살아야 한다는 말이겠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은데 다르게 보면 되게 쓸데없는 짓이다. 최근 몇년 중에 가장 절망이 되던 그 날, 남편의 한마디가 나를 웃겼다. "몰라! 그냥 빵이나 먹어!" 지난 2년동안 밀가루, 카페인, 유제품 그리고 술 각종 이러저러한 것들을 금지하고 살던 나에게 날린 통쾌한 한방이었다. 그래 빵이나 먹자. 맛있는 거나 먹고 싶은대로 먹고 주사 맞으라면 맞고 수술하자면 하고 떼라면 떼고 그냥 살자. 인생 뭐 있냐. 당분간 나에게 이것을 대체할 명언은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고민하지 말고 다들 그냥 빵이나 먹자.













어떤 주말 지극히 사사로운







날이 좋다. 며칠 연속으로 날씨가 좋고 공기까지 맑으면 불안하다니 불행한 일이다. 구름이 그림처럼 떠다니고 시원했다. 남편이 없는 주말은 왠지 느긋한 것 같아서 옷장을 뒤집었다. 몇년 동안 입지 않고 두었던 티셔츠 쪼가리들을 정리해서 버리고(맨날 티셔츠쪼가리나 사는 인생은 맨날 그렇게 또 티셔츠쪼가리를 버린다)그것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책을 찾는다고 책방에 들어가서 미련을 못버리고 이고지고 온 영어교재들을 드디어 정리했다. 책장에 있을 땐 그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을 땐 이미 늦었다. 노끈으로 몇 무더기를 묶어서 모아놓았더니 하루에 쓸 에너지를 다 쓰고도 모자랐다. 그렇게 날이 좋았는데......하필 이런 날을 고르다니. 억울하고 분해서 터덜터덜 엄마랑 나가서 팥빙수를 사먹었다. 나는 맛만 봤는데 내가 외면했던 몇년 동안 팥가격이 올랐을 리는 없는데 빙수가격이 어마어마하다. 맛이 없을 수는 없는 가격이랄까. 

그날 밤에 형우가 왔다. 이제는 다 커서 자전거타고 혼자서 할머니집에 온다. 선우랑 같이 올 때가 많은데 이번엔 혼자다. 혼자왔냐고 물으니 이번엔 유주가 같이 온다고 했는데 막판에 갑자기 안오겠다고 해서 혼자왔다고 한다. 저희들끼리 돌아가면서 올때도 형우는 거의 매번 오는 단골이다. 첫째라서 그런지 태어나서 몇 년동안 같이 산 정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뜬금없이 "아기 조형우"가 보고싶을 때가 있다. "현실 조형우"는 너무나 커서 내 상상의 아기와 충돌한다. 이게 편애라면 편애가 맞다. 아이 스스로도 토요일에 자고 가는 것에 조금은 의무감을 느끼는 것 같다. 주말에 오지 못할 때는 "죄송해요 할머니 이번 주에는 못가요. 다음 주에 갈께요."한다는데 아니라고, 죄송할 거 없다고 잘 놀다 오라고 하는데도 꼭 그런단다. 우리는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한답시고 이제 애들이 주말보내러 오는 것도 이제 얼마 안남았다 되내인다. 이렇게 빨리 시간이 지나다니 놀랍고 서운할 뿐.

형우와 아침에 일어나서 본 하늘엔 구름하나 없었다. 한낮엔 산책하기 버거울 정도로 내리 쬘 것 같아서 오전에 나가기로 했다. 마트에 자두가 나왔으니 짭짤이토마토가 비운 공간을 자두로 채워야 했다. 형우에게 같이 가겠냐 물었더니 가겠다고 해서 데리고 나갔다. 가면서 오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제법 말섞는 재미가 있다. 마트에서 엄마가 물어보라던 황매실가격을 묻고 자두를 들여다 봤다. 자두를 살거냐고 형우가 물었다. 자두 좋아하냐고 했더니 좋아한단다. 그러면서 아, 엄마한테 사달라고 할까 한다. 자두 한 박스 살거라고 하면서 이거 무거운데 가져갈 수 있으려나 혼잣말을 했더니 자기가 들 수 있다고 걱정말라고 한다. 박스로 살까말까 망설인 마음이 형우가 좋아한다니까 사게 됐다. 빵집에 들려서 쌀식빵을 사려는데 오후에 나온다고 해서 형우한테 빵하나 고르라고 했더니 클래식하게 카스테라를 고른다. 어렸을 땐 하나 고르라고 하면 꼭 두 개는 안되요? 하면서 꼭 협상테이블에 앉은 애처럼 굴어서 제 아빠에게서 네고하지말란 소리를 들었는데 이젠 그것도 다 지나간 일이다.(네고하는 버릇은 이제 게임할 때 나온다. 10분만 하라면 15분은요?하면서) 빵봉투는 내가 들고 자두박스를 들고 가는 것을 보며 몇 번을 괜찮겠냐 물었는데 괜찮다고 했다. 애한테 그런 거 들리고 나는 이렇게 달랑달랑가면 사람들이 욕할 것 같은데 했더니 그럼 사람없는 길로 가요 한다. 1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반쯤 넘어 왔을 때 애 뒷목으로 땀이 흐르는게 보였다. 땀 좀 봐! 이리 줘 고모가 들께 했더니 그제서야 진짜요? 하며 못 이기듯 내준다. 얼마나 무거웠을까. 천가방에서 냅킨을 꺼내 닦으라고 주고 다시 걸었다.

형우는 집에 와서 자두랑 카스테라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자잘한 자두라지만 대여섯개는 우습게 먹는다. 아침 먹은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나중에 먹을 줄 알았던 나는 당황했지만 점심을 좀 늦게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오전 간식을 먹고는 숙제를 했다. 한우리독서토론이라는 데서 책을 읽고 독해문제를 푸는 숙제였는데 내가 옆에서 책을 읽는 동안 꽤 집중해서 읽는다. 그런 집중력도 기특했지만 글쓰기 노트를 보여주며 제일 잘 쓴 것 하나만 골라보라는데 정말 놀랐다. 요새 초등학교 4학년의 평균 글쓰기 능력을 제법 알 수 밖에 없는 직업을 가져서 (영어로 써야하긴 하지만) 작문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범위와 논리력이 우선이 되야 하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데 줄거리를 쓴 내용도, 다른 위인의 입장에서 상상해서 쓴 내용도 생각의 가지가 잘 쳐져 있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짜내 쓴 흔적도 없고 지우고 다시 쓴 것도 보이지 않아 (글씨는 차치하고) 어렵지 않게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내용이 좋다. 생각을 잘 정리해서 쓴 것 같다. 이렇게 하는게 정말 어려운 건데 너무 장하다고 칭찬을 퍼부은 후에 너 글쓰는 거 별로 어렵지 않지? 물으니 잠깐 생각하더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타고 난 것일까. 조카들 중에서는 아니 그 가족들 중에서는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다른 부분에 부족함이 있더라도 이런 장점을 가졌다면 크게 칭찬하고 사랑을 퍼부어 모자란 부분을 덮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봤다. 내 아이라면 욕심나고 속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고모에게는 조카1호가 글쓰기 재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뿌듯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해가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오후 3시가 넘어가자 해질 무렵이 싫다면서 집에 가고 싶어하길래 엄마랑 같이 배웅할 겸 나갔다. 해질 무렵이 싫다는 것도 어릴 적에 어렴풋이 가지는 이상한 느낌의 하나겠지. 왠지 집에 가야할 것 같고 다른 식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시간. 떠나면 들어가고 싶고 안에서는 나가고도 싶은 그런 이중적인 기분. 그걸 표현하는 아이가 왠지 짠하다. 조금 무뎌도 좋을텐데 싶다가도 예민해서 좋은 것도 있지 싶고.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쉬익 금방 멀리 가버린다. 그럴 때마다 엄마랑 나는 후렴구처럼 언제 저렇게 컸대를 합창한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볼일이 있어 간 안경점이 문을 닫았다. 거기까지 간김에 책이나 보자고 교보문고에 가서 봉태규가 쓴 에세이를 읽었다. 사서 읽지는 않겠지만 궁금했다. 가정적이라는 단어를 넘어서 신조어가 필요한 남편과 아빠에 최적화된 남자로 사는 봉태규가. 결혼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배우 봉태규의 이미지였다. 그 책을 대충 훓어보고 김도훈의 새 에세이를 읽었다. 사려고 하는 책이라서 그냥 몇 페이지만 보려다가 삼분의 일쯤 읽었다. 글재주 있는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기쁘면서도 어딘가 저리다. 서점에 가서 신간을 구경하는 일은 그래서 중고서점에 가는 것과는 또 다른 오락이다.

그렇게 쨍쨍 내리 쬐고 파란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뭉쳐진다 싶어니 서점에서 나오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진다. 근처에 있던 돈까스와 냉면을 파는 집에 예약을 한 것처럼 들어가 딱 하나 남은 자리에 앉았다. 먹는 동안 본격적으로 내리더니 다 먹을 때 쯤엔 쏟아졌다. 우산을 사는 것은 논외로 하고 택시를 탈 것인가 뛰어가서 마을버스를 탈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주말저녁 비가 오는 부산한 역주변에 택시는 찾는 사람이 나말고도 많았는지 빈택시가 없어 죄송하다는 문자가 대신 왔다. 계산을 하고 나가 가게 차양에서 잠깐 고민하고 있으려니 비의 기세가 달라졌다. 몇 분뒤 지나가는 애들처럼 맞으며 가자고 결심하고 나섰을 땐 비는 거의 그치려고 했다. 하루를, 주말을 적당하게 보냈다. 너무 무리하지도 너무 나른하지도 않게 움직이고, 혼자이지도 북적거리지도 않게. 그렇다고 주말을 보내는게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또 하나의 주말을 보낸다.


보는 사람 지극히 사사로운






읽는 사람이거나 쓰는 사람이고 싶은데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 하는 행동으로 판단한다면 당연히 무언가를 들여다 보는 것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나의 정체성을 이렇게 단순하게 결정할 수 있냐고 반문하고 싶지만 아마도 이게 가장 쉽고도 정직한 판단일지도. 그나마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하나. 늘 뭔가를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피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가 피하는 사람은 아니기를 소박하게 바란다. 

[www] 그렇다. 드라마다. 그게 뭐냐고 묻는 애한테 "월드와이드웹"이라고 말했지만 더 깊이 들어가봐야 나만 손해니까 단호하게 넘어가는 분야인 그것. 미국에 잠깐 있을 때 야후가 미국에도 있냐고 해맑게 물어서 애들을 기겁하게 하고 겨우 한 장짜리 숙제를 하면서도 날려먹고 난리를 치던 나다. 그 뒤로도 여러모로 IT분야하고는 영 맞지 않는데 남편이 지금 하는 일이 조금 그쪽 분야인 듯도 하다.(아닐 수도 있는데 뭘 그렇게 컴퓨터로 하고 다니는데 아닌걸까? 말해줘도 잘 모르겠고 깊이 알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나에게는 영영 불가해한 분야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뭐 그렇게 깊이 그쪽을 다루는 건 아니다. 그저 대한민국 1위를 다투는 포털을 배경으로 일과 사랑을 이야기 한다고 해야하려나. 

같은 시간대에 [봄밤]이 있다. 첫 2회정도를 놓치고 재방 한 번 봤는데 세상 그런 깝깝함이 없다. 그에 반해 임수정과 전혜진 그리고 이다희가 주인공인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걸크러쉬가 폭발한다. 말 그대로 부시고 까고 욕하고 난리난다. 가슴이 뻥 뚫린다. 포털과 검색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아예 모르는 얘기도 아닌 것 같고 처음 들어보는 그 업계 고유명사들이 난무하지도 않는다.(이쯤에서 알함브라 얘기 한 번 더 나와줘야 하지만 참는다) 무엇보다 대사가 좋다.

임수정과 붙는 역으로 장기용이 나오는데 워낙 [나의 아저씨] 이미지가 있어서 호감은 아니었는데 와우, 신기한 남자캐릭터를 잡았다. 자발적으로 어장에 넣어달라고 하면서 "나 도도해요 얼굴 보면 몰라요." 하고 남자친구 있으면 말해달라고 세컨드는 안해봐서 공부해야 한다는 얘기를 내일 시험이니까 공부해야한다는 말처럼 한다. 쿨병 단단히 걸려서 쿨몽둥이찜질 좀 해야할 것 같은 느낌도 아니고 측은하게 매달리는 것도 아니고 끈적하게 달라붙는 텁텁함도 없이 담백하다. 그렇게 할말은 에둘러가지 않고 직구로 날린다. 임수정의 열살 연하남으로 나오는데 임수정이랑 이나영 아니면 그런 연기하겠냐며 그 둘을 좋아하는 남편이 치켜세우는데 송혜교도 있고 한지민도 있고 다 했는데 왜 차별하냐며 괜히 어깃장을 놓는다. 에라이 이놈의 얼굴이 다해먹는 세상. 졌어졌어 옛날에 지고도 오늘 또 진다. 나 도도하다고 얼굴보면 모르냐고 나도 한 번 말해보고 싶다. 얼굴 안 빨개지고 고개 안 숙이고 가책없이. 남편이 자기한테 하라는데 뭐지 이 찝찝한 기분은.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강식당2] 최고. 금요일에 콧노래를 부르며 퇴근해서 바람같이 씻고 앉아서 에피타이저로 슈퍼밴드를 보고 강식당을 보면 세상 행복하다. 남편은 방송국놈들은 새디스트도 아니고 애들을 왜 저렇게 부려먹냐고 고생한다고 고생한다고~보여주는 것 재미가 없다는데 이거 왜이러셔 강식당의 포인트는 그게 아니지. 그들의 서사를 모두 아는 자가 쓰는 자막이 압권이다. 입이 찢어져서 보다가 킬킬대다가 구르거나 하면서 시간이 가는 것이 아까워 죽는다. 아 이제 신서유기 하면 또 그거 보겠지. 이런 지경인데 내가 보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덧붙이는 사건 하나

5월의 지난하고도 정신없는 레이스가 끝나고 정신을 차리면서 다시 도서관 책들을 빌려왔다. 그 중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가 있었다. 문제는 그 책을 테이블에 두었더니 남편이 "이 책 집에 있어."했다. 그런 일쯤은 흔한 일이 되어 버린지 오래라 놀라지도 않고 그러냐 그럼 어디있냐 나는 읽지도 않았다,고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 본 것도 같았다. 책방에 들어가 책장을 찾던 남편이 나와서 "없는데?"했다. 그럼 없는 것 아니냐 어쨌든 나는 이번이 진심으로 처음 읽는 것이라며 넘겼다. 그런데 테이블로 온 엄마가 책을 보더니 "나 이거 읽었어. (책을 들어 가운데를 펼쳐 사진을 보여주면서) 얘네가 친구야. 나 읽었다니까 확실히!" 엄마는 다른데서 책을 빌리거나 읽고 올 때가 없고 오로지 임서방과 나의 책방에서 골라 보거나 내가 빌려오는 책을 같이 읽는다. 그렇다면 내가 이전에 빌렸었거나 정말로 우리집에 사서 두었다는 것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찾아야 되게 생겼다. 나와 남편과 엄마가 각각 2번 이상씩 책장을 뒤졌으나 나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정말 미스테리해진다. 남편은 알라딘같은 데서 중고책을 산다. 알라딘 목록에는 없었다. 몇 시간 후에 예스24 목록에서 2016년에 구입한 것을 찾아낼 때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았으나 딱히 나오는 수가 있을리가. 구매목록이 있다고 해서 끝날 일은 아니다. 그럼 그게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심지어 나는 읽어보지도 못한 그 책. 빌려와서 읽고는 사야겠다 마음 먹은 그 책 말이다. 일주일 출장을 가는 남편이 책을 찾아놓으라고 했지만 생각할 수록 이상할 뿐이다. 이제 와서 확실히! 읽었다고 말한 엄마는 후회중이다. "내가 읽었다고 하지 말걸 그랬어. 아후 불편해 나는 진짜 아니야 그게 진짜 어디갔니." 엄마는 괜히 찔려서 발뺌하느라 바쁘다. 엄마는 사위를 아직도 그렇게 모르냐. 그게 우리가 안 읽었다고 해서 끝날 일이겠어? 이렇게 가끔 집안에서 없어지는 물건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자기들끼리 모임하나? 정말 미스테리어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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